영어로 된 계시의 원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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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비안 서머즈
2010년 4월 10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

이 녹음에 관하여

당신이 이 오디오 녹음에서 듣는 것은 메신저 마샬 비안 서머즈를 통해 천사의 회중이 말한 음성이다.

여기에, 언어 차원을 넘는 신의 본래 메시지는 지구를 관장하는 천사의 회중에 의해 인간의 언어와 이해로 번역된다. 그리하여 회중은 메신저를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놀라운 과정에서, 계시의 음성이 다시 말하고 있다. 말씀과 음성이 세상에 있다. 역사상 최초로 녹음된 계시의 원음을 당신과 세상이 체험해볼 수 있다.

당신이 이 계시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당신과 당신 삶을 위해 계시의 유일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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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 신이 다시 말했다 > 제 6 장

신은 세상에 새 계시를 보냈으며, 이 계시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해진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한 메신저가 세상에 파견되었다. 이 메신저는 얼마간 평범한 생활을 했고, 겸손한 사람이며, 이 역할을 맡기 위해 매우 오랜 준비를 거쳤다.

다른 사람들도 신의 메신저가 되려고 메신저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겠지만, 세상에 파견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사람들이 다른 주장을 할지라도, 하늘은 당연히 이 사실을 안다.

사람들은 메신저를 두려워한다. 메신저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려워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나 않을까, 또는 어떤 큰 봉사를 하게 하거나 어떤 단체로 불러들이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이 순전히 이런 이유만으로 신의 새 계시를 거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인간의 역사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새 계시가 있다는 것이 두렵고, 제도화되어 아주 잘 자리잡은 많은 지배적 관념과 믿음에 도전이 될 새 계시가 있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창조주는 이런 관념이나 믿음에 구속받지 않으며, 지구 안에서나 우주 큰공동체 안에서 인류의 안녕·미래·운명을 위한 긴요한 메시지와 계시를 제공할 뿐이다.

신의 새 계시는 이전에 세상에 전해진 어떤 계시보다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상세하다. 새 계시는 인간가족이 문맹에서 벗어나 국제 통신으로 세계 문명과 경제에 참여하고 있는 때에 전해지고 있다. 이전 계시들은 모두 자연조건 때문에 매우 지역적이었고, 긴 기간에 걸쳐, 많은 불화·투쟁·폭력을 통해서만 전파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이전 계시들과는 매우 다른 환경이다.

지적 생명체로 가득 찬, 비인간의 우주, 그래서 이제 그들과 겨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 우주, 인류는 이런 우주로 들어가는 문턱 앞에 서 있다.

또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불안정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구 자체 역사를 제외한다면, 인류 역사마저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줄 수 없다.

새 계시는 그 안에 설명까지 되어 있다. 단순히 이전의 경우처럼 인간의 해석에만 맡겨놓은 신비한 가르침이 아니다.

이 계시는 개인의 삶과 인류의 삶에 대해 거의 모든 면을 현재와 미래 양쪽 모두에서 빠진 것 없이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역사 속의 다른 모든 계시처럼, 새 계시도 인류의 현재 관심사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말한다. 즉, 인류가 쇠퇴하는 세상에서 통합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남은 자원을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울 것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을 말한다.

새 계시는 인류가 큰공동체와의 접촉을 준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인류의 약점과 갈등, 기대 등을 이용하려고 지구에 와 있는 종족들이 세상에 지금 개입하고 있으므로, 큰공동체와의 접촉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메신저에게, 또 메신저가 준비하고 선언하는 일에 그를 돕도록 부름 받은 소수 사람에게 이 큰 메시지는 엄청난 준비를 요구했다.

메신저는 모든 질문에 답하거나 모든 요구에 해결책을 주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그의 메시지는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혼에 필요한 것, 즉 삶의 원천과 재결합할 필요성, 그리고 앎으로 불리는 깊은 지성의 현존을 통해 신이 모든 사람에게 준 힘을 얻을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메신저는 세상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려고 온 것도 아니며, 다른 집단·국가·부족들의 야망을 가지고 논쟁하려고 세상에 온 것도 아니다. 메신저는 계시와 복원의 메시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세상에 왔다. 이 메시지는 사람들이 어느 문화권에 속해 있느냐, 혹시 종교가 있다면 어느 종교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상관하지 않는다.

이 메시지는 국가나 문화, 종교이념을 초월하며, 이러한 것들에 대한 논란 또한 초월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현실과 미래를 대비하여 지구 전체의 복원과 준비를 위해 신이 보낸 새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신만이 이러한 것을 제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종교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으며, 심지어 같은 종교 안에서조차 내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종교들은 서로 논쟁하고 싸우므로, 커져 가는 지구의 큰 문제들,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에 인류를 엄습할 이 문제들을 적절히 다룰 수 없다.

이제 어느 종교가 최고인지, 어느 창시자가 가장 놀랄만한지 논쟁하는 것은 오로지 인류를 해칠 뿐이다. 그런 논쟁은 배타적이고 분열을 초래하며, 인간가족을 더욱더 곤경에 빠뜨리고 와해시킨다.

신은 어리석지 않다. 그리고 계시를 가져오도록 선택된 이가 여기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는 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긴 준비과정에서 그와 그의 가족에게 요구되는 모든 일에서 낙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새 계시에 저항하고 분개할 것이며, 온갖 방식으로 메신저를 비난하겠지만, 그가 바로 유일한 메신저이다. 그의 가치와 역할을 아는 데 실패는 보는 자의 실패이며, 신이 지금 세상에 보내는 큰 축복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데 실패이다.

메신저는 자만심이 없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지만, 새 계시가 그에게 요구하는 큰 부름과 큰 책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세상에 새 계시를 가져오는 데 겪어야 할 큰 노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신이 다시 말했다. 신의 계시는 일부 상류층이나 문화적으로 특혜 받은 사람, 부자, 자기만족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의 계시는 모든 사회의 모든 계급, 모든 신분, 심지어 가장 원시적인 사람, 가장 진보한 사람, 가장 고립된 사람, 가장 폭넓게 사는 사람까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창조주의 지혜만이 천사의 현존을 통해, 당신이 이 순간 듣고 있는 계시의 음성을 통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메신저의 사명은 세상에 계시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응답자들을 찾아 계시와 관계를 맺도록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삶에서 그들 자신의 깊은 특질과 부름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리하여 계시에 적응하고 자신의 삶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계시를 받기 위해 길을 닦을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이 주어졌다.

이 가르침에서는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실천하는 정직보다 더 정직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정직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세상에 투사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더 깊은 곳에서 흐르는 자신의 삶을 인식하여 겸허한 자세로 결단력을 가지고 그 깊은 삶을 선택하는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 깊은 삶이 개개인 안에 있는 앎의 힘과 현존, 신의 계시가 처음으로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앎의 힘과 현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숭배해야 할 영웅은 없으며, 심판의 날도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결국 낙방할 그런 마지막 시험은 없다.

왜냐하면 신은 이런 일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사람들이 앎과 함께 있지 않으면, 갈피를 못 잡고 실패할 것이며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고 자신의 삶을 위험하고 강압적인 세력들에게 넘겨주어 굴복할 것임을 알고 있다. 개개인 안에서 신의 힘이 사람들을 안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과 혼란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지구의 신은 큰공동체 전체의 신이자, 우주 전체의 신, 즉 한 은하계 안에만 해도 수백 수천억이 넘는 종족이 사는 그런 은하가 무수히 존재하는 우주 전체의 신이며, 다른 차원들은 물론 이 모든 것 너머에 변치 않는 창조물의 신이다. 당신은 이처럼 당신의 생각이나 믿음으로는 이런 장엄함 앞에서 넋을 잃을 만큼 크고 위대한 신을 다루고 있다.

이런 위대한 신이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놓아 당신을 안내하고 축복하며 큰 삶을 위해 당신을 준비시킨다. 그래서 당신의 비굴하고 애처로운 관계나 자기연민에서 당신을 빼내어, 당신에게 자기존중·친절함·자비·겸손 등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게 한다.

메신저의 사명은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제공하는 일이다. 또한 볼 수 없어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저항하고 거부하는 것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큰 부름이다. 이것은 사람들 개개인을 회복시켜 주고 큰 삶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이나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까지 모두에게 명예와 존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것은 자원이 감소하는 세상에 직면하여 통합과 협동에 대해 큰 윤리를 세우는 것이다. 당신이 혹시 풍요롭게 산 사람이라면, 그런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인간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세상으로 인해 인류 문명이 파멸될 수 있다.

세상에서 은밀히 행동하는 침략 세력들과 인류의 만남은 인류 문명을 끌어내려 파멸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며, 생각하지도 못한다. 자신의 특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작은 것들만 온통 생각해온 이들에게는 어쩌면 이것이 너무 큰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데, 바로 이 큰 그림에서 모든 사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시는 그들에게 말할 것이며, 그들이 응답하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계시는 그들을 통해,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겨 수평선 너머에서 오는 큰 일들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메신저와 협력하여 일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때 이기적이고 저돌적인 사람들, 또 자신들이 우주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자신의 독자적 해석을 갖기를 주장하고, 메신저와 협력하지 않고 독자 행동하며, 다른 가르침이나 자신의 관념과 새 메시지를 결합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순수한 것이 세상에 전해질 때마다 일어나는 변질이다. 그 때문에 새 계시는 선언서 이전에 전해지고 있으며, 서면으로 전한다. 그 때문에 당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계시의 음성을, 예수·붓다·모하메드에게 말한 바로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들을 수 있는가? 하찮은 다른 많은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이 말들을 들을 수 있는가? 비록 당신이 의심하고 수상쩍게 여기면서도, 메신저가 하는 말, 계시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계시는 속임이 없고, 복잡함이 없다. 또한 계시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흐름을 흐리게 하는 인간의 해설이 없다. 그래서 계시는 대낮처럼 분명하다.

메신저의 사명은 남은 생 동안 이곳에서 신의 계시를 충분히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가 변하는 지구에 대비할 수 있고, 큰공동체와의 접촉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의 신학이 바뀔 것이고, 신이 무엇이고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바뀔 것이다. 또한 복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근본적인 종교적 믿음에 의문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큰공동체 신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억이 넘는 종족에게 무엇이 천국인가? 신이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놓았고 당신이 앎의 축복과 복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이 지옥인가?

신의 현존과 힘에 깊이 연결되어 있든 아니든, 우주에는 수백 수천억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엇이 자신의 종교인가?

신이 언제 다시 말할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교만하고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면, 신이 다시 말할 수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신의 메신저조차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천사의 무리조차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신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할 권한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교만과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메신저는 이런 모든 일에 맞서야 할 것이다. 지적 교만에 맞서야 하고, 노골적이고 맹목적인 거부에 맞서야 하며, 온갖 비난에 맞서야 할 것이다.

1400년 만에, 신의 사랑이 가장 크게 표현된 것을 가져오는 사람을 향해서 하는 일이 이것이다. 어려움과 불완전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계시 자체의 표상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향해 하는 일이 이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가 계시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계시는 과거처럼 오직 옛날 이야기나 환상적인 이야기만을 통해서 전해 듣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인간가족은 계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계시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몇백 년이 지난 뒤, 메신저를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 표현해 놓은 것을 읽거나, 문맹자들을 위해 구전으로 전수한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전해지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데, 인류에게 한 세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행되는 변화가 너무 빠르다. 큰 세력들의 집중된 힘이 너무 강력하고 굉장하다.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을 예감하며, 여기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이 두려움을 무슨 탓으로 돌리든, 또 어떤 식으로 설명해보려고 하든, 이 두려움이 있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다가오는 변화의 큰물결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가 점점 더 나약해지고 취약해지며, 인식 밖에 있는 세력들에게 종속되고 있음을 그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신이 세상에 새 계시를 보낸 것도 바로 이런 일들 때문이다. 메신저가 세상에 온 것도 바로 이런 일들 때문이다.

메신저를 공경하고 존중하라. 그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메신저도 신이 아니었다. 그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메신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메신저가 그들의 계시와 씨름했듯이 그도 새 계시와 씨름했다.

그는 공격받고 비난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모든 메신저들도 현 메신저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어야 할 똑같은 경솔함·오만·무지로 인해 공격받고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메신저의 사명은 다리를 세우거나, 정부를 바꾸거나,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오류·불공평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명은 개개인에게 신비한 회복을 주는 것이며, 그래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들, 이미 당신에게 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평선 너머에서 오고 있는 큰 사건들에 인류가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인류가 쇠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작품이나 보물, 예술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만약 인류가 지혜를 갖추지 못해 국경을 지킬 수 없다면, 또 사람들이 상호 복지·보호·성장을 위해 응답할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통합할 수 없다면, 자유가 매우 귀한 큰공동체에서 인류는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무지·교만은 계시의 빛에 온전히 드러난다. 이는 마치 큰 빛이 세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모든 것과 기만적이고 악의적인 모든 것은 계시의 빛에 노출되게 된다. 사람들의 나약한 태도, 불쌍한 삶의 질, 회복되고 복원될 필요성, 존엄성을 되찾을 필요성, 타락과 속임수, 신앙심이 깊다고 주장하는 사람, 신앙심은 없지만 권력과 지배를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 이 모든 것이 계시의 빛에 노출되게 된다.

이 때문에 새 계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새 계시가 거짓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새 계시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고, 자신의 나약함과 오류, 자신의 위험한 경향들을 들추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는 큰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인류에게 화내지 않기 때문이다. 앎의 힘과 현존이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의식 안에서 충분히 안내하지 않는다면, 신은 사람들이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파괴적으로 행동할 것임을 안다.

신은 이것을 알지만, 인류는 모른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인식이고, 자신과의 깊은 공명이며, 당신 스스로는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는 깊은 정직이고, 큰 계시가 세상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깊은 정직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정직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이처럼 냉철할 수 있는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부유하든 가난하든, 혜택을 받고 있든 못 받고 있든,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 사람들은 정말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가? 사람들이 이것을 직시하여 이 공허함이 신에게로 돌아오라는 부름이고, 신이 응답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메신저의 사명은 이곳 지구상에서 남은 그의 생애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계시를 전하는 것이며, 또 메신저의 축복을 받으며 메신저의 큰 일을 계속 해나갈 다른 이들, 새 메시지를 미래로 전달할 다른 이들이 점점 더 많은 사람;ㅡ혜택받지 못한 사람, 풍요로운 사람, 부유한 국가, 가난한 국가, 자연 속에 사는 원주민,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 등ㅡ에게 새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것이다.

새 계시가 세상에 왔다. 이 계시는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또한 들을 수도 있고, 글로 볼 수도 있으며, 명료하게 번역될 수도 있다. 계시는 공유되어야 한다. 이것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의 의무며, 받아들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과거 모든 위대한 계시처럼, 새 계시는 처음에는 저항을 받을 것이고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신의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은 모르기 때문이고, 세상은 여기에 준비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계시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때가 되어 이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으면, 메신저가 당신 삶의 참된 현실, 즉 당신이 중요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된 현실을 아주 넓은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 중요한 일이란 아마도 세계적 규모와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규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큰 목적 때문에 세상에 파견되었다. 인간가족의 비극은 사람들이 이 큰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정치적·종교적 억압 때문에 찾을 수 없다는 점, 또 사람들이 이 큰 목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으며, 서로에게 큰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이 타락·불화·갈등·증오의 원인이며, 인간가족을 괴롭혀 우주에서 큰 민족이 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인류를 괴롭히는 이 모든 것들이 큰공동체에서 인류의 자유를 방해한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많은 사람이 깨달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깨달아서 세상에 큰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개개인의 내면에 실제로 사는 큰 양심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계시를 배운다는 것은 앎과의 관계 속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앎은 신을 떠난 적이 없으며 여전히 소통되고 있는 당신의 한 부분, 지혜롭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으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의 한 부분이다. 또한 앎은 지혜이고, 당신이 지금까지 삶에서 이룩한 모든 용기와 성실을 낳게 한 힘이다.

앎과의 관계 속으로 되돌리는 것이 메신저의 선물이다. 또 이것이 과거 메신저들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변질되었으며, 종종 그들의 말은 잘못 해석되었다.

왜냐하면 신의 모든 계시는 앎의 힘과 현존을 개개인들에게 복원시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앎의 힘과 현존이 그들의 참된 양심이고, 순수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신에게 데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다시 말했으니, 세상은 축복받았다. 메신저가 세상에 있으니, 세상은 축복받았다.

이 축복을 받아들이라. 이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라. 새 계시는 대단히 크다. 당신은 계시를 순식간에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계시를 한 문장으로 읽을 수 없다. 당신은 계시가 당신의 삶과 세상에 어떤 관련이 있고 어떤 지혜를 담고 있는지 찾기 위해 계시에 다가가야 한다.

이것은 시험이며, 계시의 시대에 사는 어려움이자 큰 기회이다. 이것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치르는 시험이다.

신은 시험에서 낙방한 이들을 벌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계시가 그들 삶에 가져다줄 권한·명확성·축복을 받는 자리에 있지는 못할 것이다.

신은 사악한 자들을 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앎과 함께하지 않을 때 사악한 행위가 일어날 것임을 신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시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큰 지성, 그들 자신이나 세상을 위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에 바탕이 되는 큰 지성으로 사람들을 부른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더욱더 명료하게 신성의 현존과 힘, 우주의 신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당신에게 큰 기회이며,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또한 인간가족이 미래에 자유롭고 잘 융화된 문명사회가 될 것이냐, 아니면 부패하여 외부 설득의 영향을 받을 것이냐를 결정지을 큰 전환점이다.

이것은 큰 전환점이고, 큰 도전이며, 큰 기회이고, 큰 부름이며, 큰 복원이다.

이것이 당신에게 이해되기를 바란다.